광주

환벽당

사촌김윤제와 송강정철이 만남 조대, 그 조대위의 정자 환벽당

방문 안내

주소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산 1-1번지

전화번호

입장료

이용시간

휴무일

기본 정보

자연과 학문의 정수가 흐르는 곳, 환벽당(環碧堂)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조선의 선비 정신이 숨 쉬는 운암산 자락 깊숙한 곳에 조용히 자리 잡은 고택, 환벽당(環碧堂). 이곳은 조선 중기 학자 김윤제(1501~1572)가 학문을 닦고 제자를 가르치며 자연과 벗한 공간으로, 단순한 정자를 넘어 남도의 유교문화와 자연사상, 그리고 한국 전통 정원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서 깊은 명소입니다.


역사 속의 환벽당

광주호 상류 창계천의 충효동 언덕 위에 높다랗게 자리잡은 정자 환벽당은 조선시대 때 나주목사 김윤제가 고향으로 돌아와 건물을 세우고, 교육에 힘쓰던 곳이다. 전에는 ‘벽간당’이라고도 불렀다. 송강 정철이 과거에 급제하기 전까지 머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다시 세우면서 가운데 2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글씨가 걸려 있으며, 임억령과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있다.

환벽당 아래로는 조대(釣臺)용소(龍沼)가 있는데, 여기에는 김윤제와 정철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어느날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다 조대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이상히 여겨 급히 그곳에 내려가보니 용소에서 한 소년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데려다가 제자로 삼고 외손녀와 결혼시켰는데, 그가 훗날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정철이었다고 한다.


자연과 하나 된 공간미학

환벽당은 전통 정자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간직한 건축물입니다. 목재로 지어진 단촐한 팔작지붕 건물은 주변 자연에 묻히듯 배치되어 있으며, 유유히 흐르는 광주호 지실마을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집니다.
마당 아래로는 고즈넉한 연못과 시냇물이 흐르고, 건물 뒤편으로는 소나무숲이 정자를 품듯 둘러싸고 있어 사계절 내내 경관이 빼어납니다.

이런 풍광은 단지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닌,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 즉 ‘성리학적 이상세계’를 실제 공간에 구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닦고, 물과 바람과 별을 벗삼아 글을 읽고 시를 짓던 선비들의 삶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문학과 예술의 산실

환벽당은 수많은 문사들의 시와 글 속에 등장하는 문학적 명소이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 시인 정철은 환벽당의 풍경을 노래하며, 이곳에서 받은 감흥을 수많은 시조로 남겼습니다. “낙수정 아래 바람소리 좋고 / 물안개 흩날리는 아침이여”라는 구절처럼, 이곳은 자연을 노래하고 마음을 비우는 장소로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환벽당을 찾는 이들은 그들이 바라본 풍경을 따라 걷고, 마음의 글귀 하나를 떠올리며 자신만의 시를 써 내려가곤 합니다.


오늘날의 환벽당

오늘날 환벽당은 광주시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힐링과 영감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광주호 둘레길과 연계된 산책 코스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전통문화 체험, 서예나 명상 등의 프로그램과 함께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특히 봄에는 매화와 벚꽃이, 여름에는 짙은 초록과 물안개가, 가을엔 단풍이 환벽당을 붉게 감싸며, 겨울에는 고요한 설경이 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미를 선사합니다.


환벽당은 단지 옛 선비가 지은 정자가 아닙니다.
그곳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참된 인간됨을 추구했던 삶의 철학이 깃든 공간, 그리고 역사와 문학,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문화유산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환벽당은 여전히 말합니다.
“가끔은 고요한 자연 속에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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