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 김영랑 생가를 걷다
바람이 잔잔히 고요를 흔드는 어느 봄날, 나는 김억추장군을 찾아 금곡사를 가던길에 북소월 남영랑으로 유명한 영랑생가를 찾아 나섰다. 마음이 말랑해지는 계절에, 서정시의 대가 김영랑(金永郞)의 숨결을 따라 강진으로....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릴 테요"
그 한 줄이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기다림의 미학, 고요한 감정의 파동을 노래하던 시인 김영랑. 그의 본명은 김윤식,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했던 순결한 시인이었다. 세상의 소란스러움과는 조금 거리를 둔 채, 영랑은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아주 조용하고 정갈하게 시를 써내려갔다.
강진 읍내에 자리한 김영랑 생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詩)다. 낮은 담 너머로 보이는 기와지붕과 흙벽, 그리고 마당 끝에 핀 고즈넉한 꽃들. 마치 영랑의 싯구가 하나하나 이 집에 새겨져 있는 듯하다. 1903년, 김영랑이 태어난 바로 그자리에 사랑채, 안채, 광채까지 정갈하게 복원되어 있어 그가 생활했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람이 살랑이는 마당에서 꽃내음이 전해온다. 나는 문득 영랑의 시가 왜 그렇게 운율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은" 그 문장은 아마 이 마당 어귀를 지나던 아침바람에 일렁이는 햇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생가 한편에는 영랑의 시를 새긴 시비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그의 시구들이 조용히 말을 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 이'와 같은 작품은 100년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맑은 울림을 전한다.
이곳에서 시는 기록물이 아니다. 살아있는 존재이며, 속삼임이다. 찬찬히 뒷마당과 앞마당, 그리고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영랑의 흔적이 담긴 이 집 어딘가에 앉아 시를 쓰고 있는 것만 같다.
여행이란 결국, 누군가의 마음을 따라 걷는 일인지도 모른다. 김영랑 생가를 찾은 하루는 영랑의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작은 순례며, 이웃집으로의 나들이만 같다.
아직 모란이 피지 않았더라도, 그 기다림조차 시가 되는 이곳. 강진의 바람결 속에서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아직 기다릴 테요.”
(글 : 전라남도지정관광가이드회 대표 조영인)